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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I 스토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두뇌싸움! 바둑 이야기

안녕하세요. 10살에 바둑을 시작해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지금까지 바둑을 두고 있는 안찬섭 프로(*삼성생명의 직급 호칭)입니다. 바둑은 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프로들의 대국을 관전하면 더욱 그 매력에 빠지게 되는데요. 프로들이 착수하는(바둑 돌을 두는) 순간에는 의도를 이해 못해도, 해설을 들으면 무릎을 탁 치면서 감탄하게 됩니다. 4년 전, AI 알파고와 이세돌 프로의 대국은 바둑계를 뛰어 넘어 대중이 주목한 세기적 대국이었는데요. 저 또한 바둑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가슴 졸이며 그 대국을 지켜봤던 기억이 납니다. 이 대결의 뒷이야기와 요즘 바둑계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미생> 장그래가 취업한 이유

제가 바둑을 처음 배우게 된 계기는 단순한데요. 부모님께서 아들이 차분해졌으면 하는 의도로 먼저 추천하셨고, 저 또한 검지와 중지로 바둑 돌을 놓는 것이 멋있어 보여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바둑을 배우며 점차 실력이 늘어 프로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는데요. 당시 제 또래 프로 기사 꿈나무들은 이미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바둑을 배워 프로 입단 직전 단계인 연구생 수준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늦었었죠. 어린 나이였지만 프로로 다가갈 준비가 된 그들을 보며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윤태호 작가님의 인기 만화이자 드라마로도 방영된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도 바둑 기원 연구생 출신이죠.

이렇게 연구생에 선발되어도 모두 프로가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100명이 넘는 연구생 중 리그전을 펼쳐 1년에 단 두 명만이 프로에 입단하게 되고, 나이 제한이 있어 19세까지 프로로 입단하지 못하면 연구생 지위를 박탈당하죠. 장그래가 취업을 결심한 것도 나이가 들어 더 이상 프로가 될 수 없기 때문이죠.

바둑 실력은 ‘급’과 ‘단’으로 표시할 수 있는데요. 입문하면 기원 18급에서 시작해 1급으로 갈수록 실력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1급이 되면 ‘아마 단’으로 넘어가는데 ‘단’부터는 ‘급’과 반대로 숫자가 높을수록 기력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아마는 초단~7단을 거치고 프로 입단 후에는 다시 초단~9단으로 올라갑니다. 이세돌, 이창호 등 유명한 프로들은 모두 9단이지요. 저의 실력은 현재 기원 3~5급(인터넷 1~3단)에 머물러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Q&A로 익히는 바둑 상식!

Q. 바둑 시합 방식은 어떻게 되나요?
A. 바둑은 가로 세로 각각 19줄로 만들어지는 361개의 교차점에 흑과 백이 번갈아 가며 돌을 두면서 상대보다 더 많은 집(교차점)을 자신의 돌로 둘러싸면 이기는 게임입니다.

Q. 바둑에서 ‘덤’은 무엇인가요?
A. 바둑에서 집을 계산할 때 백에게 더해주는 집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바둑은 흑이 먼저 두기 때문에 더 유리합니다. 그래서 맞바둑(호선)을 할 때 공평하게 백에게 마지막으로 집을 더해줍니다. 오랜 시간 경기에서 얼마만큼의 덤을 줘야 하는지 비율이 조정되어 왔고 현재 우리나라는 6.5집, 중국은 7.5집을 백에게 더해주는데요 덤이 반집(0.5집) 단위인 이유는 비기는 일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반집 승부라는 말은 덤까지 계산해 굉장한 박빙의 형세임을 의미합니다.

Q. 이세돌 프로 외에 우리나라 바둑계 유명 기사들이 궁금합니다.
A. 이세돌 프로 이전에 세계 바둑계를 주름잡은 기사는 단연 이창호 9단입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박보검 배우가 연기한 최택이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5연승을 하며 극적인 우승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이는 상하이 대첩이라 불리는 이창호 9단의 2005년 한중일 농심신라면배를 재현한 것입니다. 또한 드라마 후반부에 최택이 덕선이에게 항아리 모양 우승컵을 주며 마음을 표현한 장면은 당시 또 다른 강자 유창혁 9단이 1999년 후지쯔배 우승 후 우승컵으로 지금의 아내에게 프로포즈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장면입니다.

 

AI, 바둑계에 도전장을 내밀다

2016년 3월 9일~15일은 바둑계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 기록될 날들이었는데요. 바로 구글의 AI 알파고와 이세돌 프로가 바둑 대전을 펼친 날입니다. AI와 인류의 대결! 그 승자는 안타깝게도 알파고였는데요. 총 5국으로 진행된 대국에서 4국을 뺀 모든 대국에서 알파고가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AI가 인류를 이겼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는데요. 바둑은 특히 대국 전개가 다양해 오랫동안 AI가 정복하지 못한 게임이었습니다. 당시 세계 최고의 기사였던 이세돌 프로를 알파고가 이겼다는 것은 그만큼 AI가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대전 이후 알파고는 업데이트를 거듭하며 바둑 사이트에서 한중일 정상급 기사를 모두 제치는데요. 총 60전 60승을 기록하고 중국 바둑 1위 커제와 공식 대전을 가집니다. 그 결과는 3전 3승. 커제는 알파고의 압도적인 전투력에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진화시킨 바둑을 AI는 아주 짧은 시간에 모든 정보를 수집 분석한 뒤 이기는 방법을 터득해버렸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비록 졌지만 이세돌 프로가 알파고에게 1번이라도 이겨본 유일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알파고를 이긴 이세돌의 신의 한수 = 꼼수?

그런데 이세돌 프로는 작년 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알파고에게 1승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신의 한 수로 알려진 4국의 78수는 사실 ‘정확히 받으면 먹히지 않는 꼼수’라고 한 것인데요. 실전에서는 78수로 이세돌 프로의 백돌이 흑의 진영을 탈출하며 역전에 성공했지만, 사실 이를 차단하고 백돌을 잡는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세돌의 신의 한수 백 78에 대해 흑이 79, 81로 차단한 뒤 82의 단수를 받지 않고 83으로 늘게되면 중앙에서 상변까지의 백돌은 탈출하거나 안에서 사는 수가 없어 죽게 됩니다. 김성룡 9단은 본인의 유튜브에서 흑 83수가 이세돌의 신의 한 수를 막는 방법이었다고 강조하면서 ‘이세돌의 78수를 알파고가 이 수로 막았다면 이것이야말로 신의 한 수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죠.

인간이 AI를 무찌른 회심의 한 수가 꼼수라니, 실망하실 수도 있을텐데요. 그러나 신기하게도 78수를 막아내는 수를 찾아낸 것은 AI가 아니라 바로 복기(대국이 끝난 후 바둑의 내용과 변화를 연구하는 것)를 한 프로 기사들입니다. 지금도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은 같은 상황에서 이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에 프로들의 대국에 두어졌던 묘수들을 재현해서 테스트했을 때, AI가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됩니다. 아직까지는 인간이 AI보다 앞서있는 부분이 분명 있는 것이지요.

 

AI와 바둑의 미래

그럼에도 인간과 AI의 바둑 실력의 차이는 점점 벌어지고 있습니다. 2016년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핸디캡 없는 호선 대국을 했던 이세돌 선수는 3년 후 우리나라 NHN(네이버)에서 개발한 AI ‘한돌’과의 대국에선 2점을 미리 놓는 접바둑 (대국자끼리 실력 차이가 날 때 하수가 바둑돌 몇 개를 미리 놓고 두는 바둑)으로 시작했습니다.

현재 많은 바둑 기사들이 AI를 상대로 3점 접바둑을 두고도 쉽지 않은 승부를 펼치고 있는데요. 보통 2점 접바둑은 흑이 15집, 3점은 30집 정도 유리하다고 합니다. 대개 프로 기사들 간의 대결이 5집 이내의 차이로 끝난다고 볼 때 3점 접바둑은 어마어마한 실력차이를 의미해요.

이미 중국 바둑기사들은 자국의 AI바둑프로그램 ‘절예’를 스승삼아 훈련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기사들이 연습에 AI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AI를 나쁘게 활용한 경우도 있었는데요. 올해 초, 우리나라 바둑 프로 입단대회에서 출전 선수 중 한 명이 AI프로그램을 이용해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정행위를 적발한 당시 심판 조연우 기사에 다르면, 이 선수는 초소형 카메라를 옷에 달아 대국 상황을 촬영해 외부로 전달했다고 하는데요. 공모자가 AI프로그램을 돌려서 다음 수를 선수가 치료용 붕대로 감추고 있던 무선이어폰을 통해 알려줬다고 합니다.

AI와 인공지능의 대결을 강조하지만, 어차피 인공지능도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입니다. 이를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바둑계가 발전하면서 새로운 길이 열릴 것 같습니다. 물론 부정행위처럼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겠죠. 바둑을 통해 인간과 AI가 서로 윈윈하는 결과를 낳길 기대해 봅니다!